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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오클랜드 북쪽 트랙워킹 (해안 산책, 원시림 힐링, 한식 맛집)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15.

주말마다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게 최고의 휴식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발 끈을 묶고 오클랜드 북쪽 트랙에 발을 들인 뒤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클랜드 북쪽 지역은 해안 절벽과 원시림이 30분 거리 안에 공존하는, 걷는 사람에게 유독 친절한 동네입니다. 트랙워킹을 마친 뒤 알바니 인근 한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는 루틴이 생기고 나서야, 이게 진짜 뉴질랜드 사는 맛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클랜드 북쪽 트랙워킹

 

 

해안 산책: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다는 것

셰익스피어 리저브(Shakespear Regional Park)에 처음 갔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걸프 하버(Gulf Harbour) 인근에 위치한 이 공원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목초지와 하우라키 걸프(Hauraki Gulf)가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코스입니다. 하우라키 걸프란 오클랜드 동쪽 해안을 감싸는 만(灣)으로, 수십 개의 섬이 점점이 떠 있는 뉴질랜드 대표 해양 경관입니다.

티리티리 트랙(Tiritiri Track)을 따라 언덕 정상에 오르면 그 경관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제가 처음 올라간 날은 일몰 직전이었는데,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그 장면은 카메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방목된 양 떼가 트랙 옆을 어슬렁거리는 풍경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타카푸나-밀포드 워크(Takapuna to Milford Walk)는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화산암 지형(volcanic rock formation), 즉 과거 화산 활동으로 굳어진 현무암 지반 위를 걷는 코스인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드러나는 지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때표를 확인하고 썰물 때 방문하면 바위 사이 조수 웅덩이, 이른바 타이달 풀(tidal pool)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타이달 풀이란 썰물 때 바위 사이에 물이 고여 작은 해양 생태계를 이루는 지형을 말합니다. 걷기를 마치고 타카푸나 시내에서 아이스 롱 블랙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코스를 마무리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중독성 있습니다.

원시림 힐링: 조용한 숲길이 주는 것들

롱베이 리저브(Long Bay Regional Park)는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오클랜드 북쪽에서 가장 접근하기 좋은 곳입니다. 넓은 백사장과 잔디밭이 주를 이루지만, 코스털 트랙(Coastal Track)을 따라 절벽 위로 올라가면 숨겨진 바다 전망이 나옵니다. 주말이면 바비큐를 즐기는 현지인들로 가득한데, 그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걷다 보면 왠지 저도 이 동네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자주 떠올리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원더홀름 리저널 파크(Wenderholm Regional Park)입니다. 오레와(Orewa)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오클랜드 최초의 리저널 파크(Regional Park), 즉 오클랜드 광역시가 공식 지정한 자연 보호 공원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제가 직접 여러 번 찾아간 곳이기도 합니다.

원더홀름의 숲길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포후투카와(Pohutukawa) 나무입니다. 포후투카와란 뉴질랜드 북섬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원시 수목으로, 12월에 붉은 꽃을 피워 '뉴질랜드 크리스마스 트리'라고도 불립니다. 수백 년 된 거목들이 가지를 뻗어 터널처럼 길을 덮고 있는데, 그 아래를 걷다 보면 도시 소음이 정말로 차단되는 느낌입니다. 산림욕(Forest Bathing), 즉 숲 속 환경에 몸을 노출시켜 심신을 회복하는 활동의 효과를 학문적으로 검증한 연구들이 있는데, 원더홀름에서는 그 효과가 유독 강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뉴질랜드 자연보전부(DOC)는 포후투카와 보호와 관련 트랙 정비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트랙워킹 전 꼭 알아야 할 기본 사항

트랙워킹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리한 체크리스트를 공유합니다.

  1. 트레일 레이팅(Trail Rating) 확인: 오클랜드 리저널 파크 공식 사이트에서 각 코스의 난이도를 미리 확인합니다. 트레일 레이팅이란 트랙의 경사도, 소요 시간, 지형 특성을 종합해 난이도를 표시한 등급 체계입니다. 셰익스피어와 원더홀름은 중급, 롱베이는 초급~중급 수준입니다.
  2. 조석표(Tidal Chart) 체크: 타카푸나-밀포드 워크처럼 해안 암반 위를 걷는 코스는 물때에 따라 접근 가능 여부가 달라집니다. 출발 전 뉴질랜드 토지정보국(LINZ) 조석 정보에서 반드시 확인하세요.
  3. 선크림과 방수 재킷: 뉴질랜드 자외선 지수(UV Index)는 한국보다 현저히 높습니다. 흐린 날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동시에 날씨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얇은 방수 재킷은 필수입니다.
  4. 주차 시간 제한 확인: 일부 파크 입구는 주차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도착 전 Auckland Council 공식 앱에서 확인하면 과태료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뉴질랜드 트랙은 그냥 운동화로 가도 된다"고 알고 있는데, 코스에 따라 젖은 점토 지형이나 급경사 구간이 나오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 티리티리 트랙은 특히 비 온 직후 미끄럽습니다. 가능하면 그립력이 있는 트레일화를 권합니다.

한식 맛집: 운동 후 보상이 있어야 다음에도 나온다

주변에서 "어떻게 꾸준히 걷냐"고 물어보면 저는 항상 같은 말을 합니다. 걷고 나서 맛있는 걸 먹기 때문이라고요. 노스쇼어 알바니(Albany)와 글렌필드(Glenfield) 일대에는 수준 높은 한국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한국 교민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온 곳으로, 서울의 음식점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메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밥을 먹을 때는 그냥 밥이었는데, 2시간 트랙워킹 후에 먹는 국밥은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경험해보니, 땀을 흘린 뒤 먹는 한식의 감동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알바니 쪽 한식당은 주말 점심 시간대에 특히 붐비니, 오전 10시쯤 워킹을 시작해서 정오 전후에 도착하거나 미리 예약하는 편이 좋습니다.

 

40대에 접어들며 체력에 대한 걱정이 생겼을 때, 저는 헬스장 대신 오클랜드 북쪽 트랙을 선택했습니다. 1년 넘게 걸어보니 예민하던 성격이 눈에 띄게 차분해졌고, 체력 수치도 실제로 좋아졌습니다. 특별한 장비나 비용 없이 신발 하나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트랙워킹의 큰 장점입니다. 이번 주말, 어느 한 곳만 골라 일단 나서보시길 권합니다. 셰익스피어든 원더홀름이든, 걷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마 비슷할 것입니다. 왜 진작 안 왔을까,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