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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뉴질랜드 산책으로 경험하는 트래킹 (레이크 하이에스, 레드우드 숲, 마운트 망가누이)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3.

 

레드우드 숲을 트래킹 하는 사람들

 

 

남성 여행을 준비하면서 부터 저는 3박 4일짜리 그레이트 워크(Great Walk)를 예약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퀸스타운에서 렌터카를 세우고 우연히 들어선 1시간짜리 숲길 하나가 그 계획을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관악산에서 수직으로만 걷던 제가, 처음으로 '수평으로 걷는 것'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이었습니다. 체력 소모는 최소화하면서 감동은 온전히 챙길 수 있는 뉴질랜드 1시간 산책 코스, 직접 걸어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봅니다.

 

레이크 하이에스와 레드우드: 같은 '산책'이지만 전혀 다른 자연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 짧은 코스라고 소개됐는데, 막상 걸어보니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치는 여행.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1시간짜리 산책이라면 준비도 필요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나섰다가 뉴질랜드의 날씨 변화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퀸스타운 근처에 있는 레이크 하이에스(Lake Hayes)는 한 바퀴가 약 8km로, 느긋하게 걸으면 1시간 30분 안에 돌 수 있습니다. 평탄한 흙길이라 무릎 관절에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이 저한테는 결정적이었습니다. 무릎 연골(meniscus)이란 무릎 관절 사이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반달 모양의 연골 조직인데, 40대부터는 수직 등반보다 평지 걷기가 이 조직 보호에 훨씬 유리하다는 건 정형외과 선생님께 직접 들었습니다. 호수 수면에 산맥이 거울처럼 비치는 장면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가 완전히 다릅니다. 바람이 잠시 멈춘 오전 7시, 저는 그 호수 앞에서 한 20분을 그냥 서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죠.

로토루아의 레드우드 숲(Redwoods Whakarewarewa Forest)은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삼나무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란 나무가 해충이나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출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인체에 흡입되면 면역 세포인 NK세포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편백나무 숲에서도 느껴봤지만, 레드우드의 그것은 밀도 자체가 다릅니다. 30분짜리 짧은 루프부터 2시간짜리까지 코스가 세분화되어 있어서 그날 컨디션에 맞게 고를 수 있다는 것도 실용적입니다. 제가 걸었던 날 아침엔 안개가 낮게 깔려서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코스 모두 뉴질랜드 자연보전부(DOC, Department of Conservation)가 관리하는 공식 트레일입니다. DOC는 고령자와 신체적 제약이 있는 여행자도 자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지 액세스(Easy Access)' 등급 코스를 별도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 정보는 DOC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운트 망가누이 베이스 트랙: 정상을 포기했더니 보인 것들

솔직하게 물어볼게요. 뉴질랜드까지 와서 정상도 안 오르면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마운트 망가누이(Mount Maunganui) 앞에서도 처음엔 정상 루트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날 전날 장거리 운전으로 허벅지가 이미 뻑뻑한 상태였고, 결국 베이스 트랙(Base Track)을 선택했습니다.

베이스 트랙은 말 그대로 산의 밑동을 한 바퀴 도는 해안 산책로입니다. 약 45분이면 완주할 수 있고, 코스 내내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코스에서 야생 물개를 처음 만났는데, 지정된 관찰 구역 안에서 2~3마리가 바위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3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묘한 감각은, 어떤 정상에서 찍은 사진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액티브 리커버리(Active Recovery)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액티브 리커버리란 격렬한 운동 다음 날 완전히 쉬는 대신, 가벼운 유산소 활동으로 근육에 쌓인 젖산(lactic acid)을 능동적으로 제거하는 회복 방식을 뜻합니다. 젖산이란 근육이 산소 없이 에너지를 만들 때 생기는 부산물로, 근육통과 피로감의 주요 원인입니다. 전날 무리했다면 다음 날 아침 1시간 산책이 오히려 몸 회복을 앞당긴다는 것, 제 몸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운트 망가누이처럼 인기 있는 코스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리면서 '자연의 훼손'이라는 문제도 생기고 있습니다. 산책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보험도 없이, 장비도 없이 입산했다가 저체온증으로 구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뉴질랜드가 특유의 고요함으로 사랑받는 나라인 만큼, 이런 변화가 안타깝다는 현지인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1시간 산책을 제대로 즐기는 현실적인 준비법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짧은 산책에서 최대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장비 이야기를 하면 과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신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뉴질랜드는 오존층(ozone layer)이 얇아서 자외선 지수(UV Index)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오존층이란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이 밀집된 구간으로,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 중 인체에 해로운 UV-B를 걸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뉴질랜드, 특히 남섬 일대는 이 층이 얇아 여름철 UV 지수가 11을 넘는 날도 흔합니다. 1시간짜리 산책이라도 선크림과 모자는 선택이 아닙니다.

제가 세 코스를 다니며 경험으로 정리한 필수 체크리스트입니다.

  1. 선크림 SPF50+ 및 챙 넓은 모자: 뉴질랜드 자외선은 한국의 1.5배 수준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흐린 날도 예외가 없습니다.
  2. 경량 바람막이 또는 다운 베스트: 숲 그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체감 온도가 급격히 내려갑니다. 배낭에 접어 넣을 수 있는 제품이면 충분합니다.
  3. 물 500ml 이상: 짧은 코스라도 탈수(dehydration)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탈수란 체내 수분이 필요량 이하로 줄어든 상태로, 두통과 집중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4. 트레일 러닝화 또는 경등산화: 평지라도 흙길 또는 해안 바위 구간이 포함된 코스에서는 운동화보다 그립이 좋은 신발이 필요합니다.
  5. 출발 시각 조절: 일몰 1시간 전 산책을 시작하면 뉴질랜드 특유의 황금빛 햇살을 온전히 맞을 수 있습니다. 저는 레이크 하이에스에서 이 타이밍을 맞췄고, 그게 이 산책이 제 전체 뉴질랜드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됐습니다.

매직 아워(Magic Hour)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습니다. 매직 아워란 일몰 직전 약 1시간 동안 태양 고도가 낮아지면서 빛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대를 뜻합니다. 사진 촬영에서도 '골든 아워'라는 말로 불리는 바로 그 시간입니다. 뉴질랜드의 숲길과 호수는 이 빛 아래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뉴질랜드 산책 관련 안전 정보는 AdventureSmart NZ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짧은 산책이라도 산행 계획을 등록해두는 문화가 뉴질랜드에서는 일반적입니다.

결국 제가 뉴질랜드에서 배운 것은 '덜 가는 것이 더 많이 보인다'는 감각이었습니다. 3박 4일 코스를 정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시간짜리 숲길에서 이끼 한 조각을 30분 동안 들여다보는 80대 부부의 눈빛이 저를 바꿔놓았으니까요. 다음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일정표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1시간'을 하나 먼저 넣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한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참고: DOC(뉴질랜드 자연보전부)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doc.govt.nz AdventureSmart NZ - https://www.adventuresmart.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