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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우루푸카푸카 룩아웃 (페리, 룩아웃 루프 트랙, 오타이오베이)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28.

솔직히 말하면, 처음 우루푸카푸카 섬 이름을 들었을 때 발음조차 제대로 못 해서 페리 직원 앞에서 살짝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섬에 발을 디뎠을 때, 그 어색함은 순식간에 잊혔습니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Bay of Islands)의 140여 개 섬 중에서도 가장 크고 깊은 곳, 오타이오 베이에서 시작하는 룩아웃 루프 트랙은 제가 뉴질랜드에서 걸어본 코스 중 단연 손에 꼽힙니다.

우루푸카푸카 룩아웃 (페리, 룩아웃 루프 트랙, 오타이오베이)

페리 없이는 닿을 수 없는 섬, 그 진입 방식부터가 특별합니다

우루푸카푸카 섬은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파이히아(Paihia)나 러셀(Russell)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야만 접근이 가능한 섬입니다. 이 진입 방식 자체가 이미 일상과의 단절을 만들어 줍니다. 바다 위를 건너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는 머릿속에 꽉 차 있던 것들이 하나둘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페리 스케줄을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 귀항 페리 시간을 안일하게 봤다가 마지막 배를 20분 앞두고 트랙 중간에서 뛰어야 했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지금은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귀항 시각을 사진으로 찍어두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트랙 자체가 루프(Loop) 형태, 즉 출발점과 도착점이 동일한 순환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지만, 시간 관리는 필수입니다.

섬 전체는 보존 구역(Conservation Area)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존 구역이란 뉴질랜드 자연보존부(DOC, Department of Conservation)가 생태계와 역사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하고 관리하는 공간을 뜻합니다. 덕분에 섬 안에는 상업 시설이 거의 없고,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유지됩니다. 이것을 불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점이 이 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룩아웃 루프 트랙 : 루트와 실제로 걸어본 솔직한 후기

공식 코스명은 오타이오 베이에서 출발하는 우루푸카푸카 룩아웃 루프 트랙(Urupukapuka Lookout Loop Track)이며, 총 거리는 약 4.5km, 소요 시간은 넉넉하게 잡으면 2시간 안팎입니다. 난이도는 중하 수준으로, 등산 전문 장비가 없어도 접지력 좋은 워킹화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트랙워킹(Trackwalking)이란 자연 지형에 조성된 비포장 트레일을 따라 걷는 활동입니다. 일반 산책과 달리 경사 변화와 자연 지형을 그대로 걷기 때문에 하체 근육과 심폐 기능에 균형 잡힌 자극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트랙워킹은 초보자에게 부담이 크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코스를 걸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능선 경사가 완만하고 트랙 폭도 넉넉해서 체력에 자신이 없는 분들도 충분히 완주할 수 있습니다.

트랙 중간에는 마오리족의 옛 요새 유적지인 파(Pā)가 여러 군데 등장합니다. 파(Pā)란 마오리 전통 방어 취락지로, 주로 언덕 위에 목책과 해자를 갖춰 적의 침입을 막던 군사적 거점입니다. 이 유적지들을 그냥 지나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봤습니다. 수백 년 전 이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봤을 사람들을 상상하니, 트랙이 단순한 운동 코스가 아니라 시간의 켜를 밟고 올라가는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트랙을 걸으면서 준비하면 좋을 것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방풍 기능이 있는 가벼운 바람막이 재킷: 능선 위는 바닷바람이 예상보다 강합니다. 땀이 식은 직후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2. 개인 텀블러와 간식: 섬 안에 편의시설이 거의 없으므로 물과 가벼운 에너지 식품을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3. 자외선 차단제(SPF 50 이상)와 모자, 선글라스: 뉴질랜드의 자외선 지수는 한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오전에도 무방비로 걸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4. 접지력 좋은 워킹화 또는 트레킹화: 능선 잔디와 흙길이 이슬에 젖어 있을 경우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5. 귀항 페리 시각 확인: 놓치면 섬에 고립됩니다. 이건 정말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오타이오 베이, 시작점이자 가장 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

트랙의 출발점이자 귀환점인 오타이오 베이(Otaio Bay)는 제가 뉴질랜드에서 본 해변 중 가장 투명한 바다를 가진 곳입니다. 해변 위에 서면 수면 아래 조약돌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이런 투명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지역 해수의 낮은 탁도(Turbidity), 즉 물속에 부유하는 입자의 양이 극히 적다는 뜻입니다. 오염원이 거의 없는 청정 보존 구역이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어싱(Earthing)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곳을 특히 마음에 들어 할 것입니다. 어싱이란 맨발로 자연 지면, 특히 모래나 흙, 잔디 위를 걸으며 지구의 자연 전위와 신체를 직접 접촉시키는 행위를 뜻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스트레스 완화와 수면의 질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트랙을 마친 후 신발을 벗고 오타이오 베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었는데, 그 감각이 워킹 내내 쌓인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어싱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효과 여부를 떠나서, 맨발로 차가운 모래를 밟는 그 감각 자체가 주는 감각적 쾌감과 집중력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학적 효과인지 단순한 감각 자극인지는 저도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만, 걸은 후 해변에서 맨발로 서 있는 그 시간이 이 코스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합니다.

룩아웃 정상에서 마주한 360도 파노라마, 그 압도감에 대하여

우루푸카푸카 룩아웃(Urupukapuka Lookout)은 섬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조망대입니다. 이곳에 오르면 베이 오브 아일랜드의 140여 개 섬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장관이 펼쳐집니다. 파노라마(Panorama)란 수평 방향으로 시야가 차단 없이 넓게 트이는 전망 방식을 뜻하는데, 이 조망대는 그 개념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은 날 오전에서 정오 사이에 오르는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태양이 수면 위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오후와 달리, 오전 햇살은 수직에 가깝게 내리꽂혀 바다 색이 가장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제가 처음 이 시간대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첫 방문 때 오후 3시쯤 올랐더니 역광 때문에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두 번째 방문 때 오전 10시에 올랐을 때 비로소 제가 기대했던 그 색감을 봤습니다. 같은 장소인데 시간대 하나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예상 밖이었습니다.

뉴질랜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베이 오브 아일랜드 해양 공원(Bay of Islands Maritime Park)은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이 해양 보호구역(Marine Reserve)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생태 보전 등급은 뉴질랜드 최고 수준으로 관리됩니다. 그 덕분에 룩아웃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색은 관리된 청정함 그 자체입니다. 짙은 군청색 수평선과 초록빛 섬들 사이에서, 저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서 있었습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지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지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워킹을 마치고 나서 오타이오 베이 인근 카페에서 마신 플랫 화이트(Flat White) 한 잔의 기억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