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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타와라누이 트레킹 (에콜로지 트레일, 희귀 조류, 힐링 워킹)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27.

머릿속이 꽉 막힌 채로 아무 생각도 정리가 안 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 주말, 저는 무작정 차를 몰아 오클랜드 북쪽 끝자락, 타와라누이 오픈 보호구역(Tāwharanui Open Sanctuary)으로 향했습니다. 막연히 "걸으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게 단순한 기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곳을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됐습니다.

 

타와라누이 트레킹 (에콜로지 트레일, 희귀 조류, 힐링 워킹)

 

에콜로지 트레일, 처음 발을 들여놓은 날

타와라누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입구의 해충 방지 게이트(Pest-proof Fence)입니다. 해충 방지 게이트란 쥐나 족제비 같은 포식 동물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치한 특수 울타리를 뜻합니다. 차에서 내려 게이트를 직접 열고 닫으며 들어가는 그 절차가 처음엔 낯설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의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 자체가 달라진다는 걸 느꼈거든요.

제가 주로 걷는 코스는 타와라누이 에콜로지 트레일(Tāwharanui Ecology Trail)입니다. 에콜로지 트레일이란 생태계 보전 지역 내부를 따라 조성된 자연 탐방 경로를 뜻하며, 이곳은 약 4km 루프 형태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습니다.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운동화만 신어도 되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목초지 구간이나 언덕 오르막에서 미끄럼이 꽤 있었습니다. 접지력이 좋은 트레킹화를 챙기는 게 맞습니다.

숲에 들어서면 은고사리(Silver Fern)와 니카우 팜(Nikau Palm)이 만드는 초록빛 터널이 머리 위를 덮습니다. 은고사리란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양치식물로, 잎 뒷면이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아래를 걸을 때의 질감이 다른 어떤 숲길과도 달랐습니다. 빛이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지면서 들어오는데, 그 아래 서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숨이 한 박자 느려지더라고요.

희귀 조류와 보내는 조용한 시간

이 보호구역을 다른 트레킹 코스와 구분 짓는 가장 큰 이유는 희귀 조류입니다. 숲길에 들어선 지 몇 분도 안 돼서 투이(Tui) 새 소리가 들려옵니다. 투이란 뉴질랜드 고유의 조류로, 두 개의 성대를 가져 복잡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진 꿀빨기새(Honeyeater) 계열의 새입니다. 첫 번째 방문에서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음절이 겹쳐지면서 울리는 소리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판테일(Fantail) 새는 사람을 겁내지 않고 아주 가까이 따라옵니다. 처음엔 그냥 우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걸을 때 발에 튀어 오르는 벌레를 잡아먹는 습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발걸음을 따라 폴짝거리며 쫓아오는 판테일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작은 생물에게 집중해본 적이 얼마나 됐나 싶었거든요.

뉴질랜드 자연보전부(Department of Conservation)에 따르면 타와라누이 보호구역은 키위(Kiwi), 코카코(Kōkako), 티티(Tītī) 등 멸종위기 조류의 번식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생태적 거점입니다(출처: 뉴질랜드 자연보전부(DOC)). 이처럼 관리되는 생태 보호구역은 뉴질랜드 전역에서도 드물기 때문에, 단순히 풍경을 보러 가는 것과는 결이 다른 경험을 줍니다. 저는 이곳에서 걷는 동안 새 도감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트레킹 전 준비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입구 게이트 통과 전 차량 내부에 쥐나 해충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매너입니다. 보호구역 생태계 보호를 위한 기본 규칙입니다.
  2. 접지력이 좋은 트레킹화를 반드시 착용합니다. 목초지와 흙길이 섞여 있어 일반 운동화로는 미끄럽습니다.
  3. 자외선 차단제(SPF 50 이상)와 모자를 챙깁니다. 능선 위 해안 구간은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4. 언덕 오르막에서 땀이 식을 때를 대비해 바람막이 재킷을 배낭에 넣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5. 오전 이른 시간대에 출발하면 주말 나들이 인파 전에 조용히 걸을 수 있습니다.

언덕 정상에서 느낀 것, 그리고 힐링 워킹의 의미

숲길을 빠져나와 언덕을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터집니다. 문레이 비치(Moonlight Bay)와 하우라키 걸프(Hauraki Gulf)의 수평선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그 순간은, 제가 타와라누이를 반복해서 찾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전망대 앞에 서서 보는 풍경과 땀을 흘리며 직접 걸어 올라가서 마주치는 풍경은 심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걷기는 인간에게 최고의 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요즘은 이게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걸 체감합니다. 실제로 녹지 환경에서의 걷기가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반응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장기적으로 수치가 높으면 면역력 저하와 수면 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삼림욕(Forest Bathing), 즉 숲 속을 천천히 걷는 행위가 이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보건원 NIH 연구 자료).

저는 이 코스를 규칙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만성 피로가 줄어드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걷기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건 과장이겠지만, 타와라누이의 숲과 바다를 번갈아 보며 걸을 때 머릿속의 잡음이 정리되는 건 분명히 실감했습니다. 워킹을 마친 후 조망 벤치에 앉아 플랫 화이트(Flat White)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저에게는 한 주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됐습니다. 플랫 화이트란 에스프레소에 스팀 밀크를 부은 뉴질랜드·호주식 커피로, 라떼보다 진하고 카푸치노보다 부드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가까운 마타카나 빌리지 카페에서 마시는 그 한 잔이 트레킹의 마침표 같습니다.

타와라누이는 특별한 장비도, 대단한 체력도 필요 없습니다. 걷고 싶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오클랜드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거리인데, 막상 도착하면 도시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을 줍니다. 자연 속 걷기를 처음 시작하려는 분이든, 지쳐서 조용한 곳이 필요한 분이든, 한 번 직접 가보시길 권합니다. 정답은 언덕 정상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