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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마타이타이 베이 (조용한 해변 산책, 산책 코스, 해질녘 힐링 스팟)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19.

해변을 좋아한다면서 왜 항상 사람 많은 곳만 찾게 될까요.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주말마다 미션베이나 타카푸나로 향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냥 조용한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때 처음 간 곳이 마타이타이 베이였고, 이후로 이 해변은 제 조용한 회복 루틴이 됐습니다.

 

 

마타이타이 베이 (조용한 해변 산책, 산책 코스, 해질녘 힐링 스팟)

클레브던을 지나 느려지는 풍경, 도착 전부터 시작되는 산책

오클랜드에서 마타이타이 베이로 가는 길을 처음 달렸을 때, 이상하게 목적지보다 길이 먼저 몸을 풀어줬습니다. Clevedon을 지나면 도로 옆 풍경이 확 달라집니다. 낮은 목장 울타리, 젖은 풀 냄새,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바다 쪽에서 바람이 밀려오는 느낌. 오클랜드 시내에서 약 50km,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데도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감각이 생깁니다.

마타이타이 베이는 Waitawa Regional Park(와이타와 리저널 파크) 안에 자리한 해변입니다. 와이타와 리저널 파크란 오클랜드 남동쪽 해안을 따라 조성된 지역 공원으로, 2014년부터 오클랜드 카운슬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해안 공원이 아니라 산악자전거, 카약, 승마, 디스크 골프까지 아우르는 활동형 자연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바다만 보러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몸을 쓰고 싶은 날에도 꽤 충실하게 채워주는 곳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이브 구간 자체를 좋아합니다. 한국에서 살 때 바다는 대부분 '이벤트'였는데, 여기서는 그냥 방향만 잡고 커피 한 잔 들고 차를 몰아도 되는, 생활의 틈 같은 장소가 있다는 게 아직도 좋습니다. 얇은 재킷 하나 뒷좌석에 던져두고 특별한 계획 없이 출발하면 됩니다. 그런 날에 마타이타이 베이는 딱 맞는 목적지입니다.

한 가지 미리 알아두면 좋은 것은 물때입니다. 조수 간만(Tidal Range)이란 만조와 간조 사이의 수위 차이를 말하는데, 마타이타이 베이처럼 바위와 조개껍질이 섞인 해안에서는 이 차이가 걷는 경로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출발 전 MetService 조수 예보를 한 번 확인하고 가는 습관을 들이면, 해안 가장자리를 더 편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모래가 아닌 조개껍질 해변, 그리고 Waitawa 산책 코스와 연결되는 길

처음 마타이타이 베이 해변에 발을 디뎠을 때 솔직히 조금 당황했습니다. 고운 모래를 기대했는데, 발밑이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과 자갈로 가득했습니다. 맨발로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꽤 불편합니다. 제 경험상 샌들이나 가벼운 워킹화를 신고 가는 게 확실히 낫습니다.

그런데 그 질감이 오히려 이 해변을 더 기억에 남게 합니다. 파도가 조개껍질 사이를 빠져나갈 때 나는 소리는 일반 모래 해변과 다릅니다. 사각거리면서도 가볍고, 바람이 잔잔한 날에는 파도 소리보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더 오래 귀에 남습니다. 관광지처럼 반짝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로컬스럽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타이타이 베이는 셸터드 베이(Sheltered Bay)에 해당합니다. 셸터드 베이란 지형적으로 바람과 파도를 어느 정도 막아주는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을 뜻합니다. 덕분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물결이 비교적 잔잔하고,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들이 피크닉을 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다만 뉴질랜드 해안은 언제든 조류가 바뀔 수 있으니, 수영 전에는 현장 상태를 꼭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해변에 충분히 앉아 있다가 발걸음을 옮기면 Waitawa Regional Park의 산책 루프들이 이어집니다. 공원 안에는 Pūweto Loop, Kererū Loop, Kōtare Loop, Pīwakawaka Loop 등 여러 코스가 있는데, 각각 숲길, 목장지대, 능선, 해안 풍경을 조합해서 걷는 루트입니다.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욕심내지 않고 해변에서 한참 쉬다가 짧은 구간만 살짝 걸어보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게 이 공원과 잘 맞는 방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트랙 상태가 진흙질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안 바람이 강한 구간과 진흙 구간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흰 운동화는 추천하지 않습니다(Freewalks.nz 코스 정보 참고). 마타이타이 베이를 방문하기 전 아래 사항을 미리 체크해두면 더 쾌적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1. 출발 전 MetService에서 조수 간만 시간을 확인한다. 바위 구간 접근 시 특히 중요합니다.
  2. 맨발 대신 샌들이나 접지력 있는 워킹화를 신는다. 조개껍질 해변과 진흙 트랙 모두 대비할 수 있습니다.
  3. 얇은 바람막이를 반드시 챙긴다. 해변과 능선 구간의 체감온도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4. 물과 간식을 미리 준비한다. 공원 안에 별도 매점이 없어 루프 코스를 걸을 경우 필수입니다.
  5.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온 다음 날이라면 긴 루프 코스보다 해변 위주로 시간을 보내는 편을 추천합니다.

Waitawa Wharf와 오래된 땅의 기억, 해질녘 힐링 스팟으로서의 시간

마타이타이 베이에서 조금 걸으면 Waitawa Wharf(와이타와 부두)가 나옵니다. 지금은 낚시를 하거나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장소로 쓰이고 있지만, 이 부두 아래 조류가 강한 편이라 뛰어내리거나 무리하게 접근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예전에 이 지역이 폭약 제조와 운송에 사용되던 시절의 흔적과 연결된 장소라는 걸 알고 나서는, 이 부두 앞에 서면 묘하게 다른 감각이 생깁니다.

마타이타이 베이 주변에는 마오리 파(Pā) 유적도 남아 있습니다. 파(Pā)란 마오리가 방어와 거주 목적으로 만든 요새화된 마을을 뜻하는데, Koherurāhi Point와 Mātaitai Point 쪽에 그 흔적이 언급됩니다. 뉴질랜드 해안 공원을 걷다 보면 자연만 있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땅마다 이전의 삶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농장, 공장, 부두, 마오리 파 유적, 그리고 다시 지역 공원으로 돌아오는 과정. 마타이타이 베이는 그런 켜가 있는 장소입니다.

 

해질녘에 이 해변에 앉아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저는 이상하게 그 시간에 특별히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됩니다. 조개껍질 위를 천천히 지나가는 파도 소리, 점점 낮아지는 빛, 가끔씩 코를 스치는 바닷바람. 그게 전부인데 몸 안의 소음이 조금 낮아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해질녘 힐링 스팟으로 이 해변을 소개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잘 쉬어집니다.

이쪽을 다녀오면 저는 거의 항상 돌아오는 길에 Clevedon에서 잠깐 멈춥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거나, 배가 고프면 피시앤칩스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루틴입니다. 바닷바람을 실컷 맞고 나면 이상하게 뜨거운 국물이 떠오르는 날도 있어서, 오클랜드로 돌아와 찌개나 국밥으로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그게 제 마타이타이 베이 루틴의 끝입니다.

마타이타이 베이는 꼭 가봐야 할 명소라는 수식어보다, 조용히 다녀오면 다음 날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해변이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주차장, 화장실, 피크닉 공간, 바비큐 시설도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에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하루를 통째로 비우지 않아도, 차로 한 시간쯤 달려가 바다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방향이 달라지는 경험이 있다면, 그 다음 목적지는 마타이타이 베이로 정해봐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