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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로토루아 레드우드 산책 (산림욕, 피톤치드, 트레킹 코스)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22.

번아웃이 왔을 때 사람들은 흔히 바다를 찾거나 카페에 틀어박힙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40대에 접어들면서 만성 피로와 이유 없는 무기력함이 반복되자, 그 어떤 카페인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로토루아 레드우드 숲에서 규칙적으로 걷기 시작한 뒤, 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실제 경험과 함께 솔직하게 정리했습니다.

 

로토루아 레드우드 산책 (산림욕, 피톤치드, 트레킹 코스)

산림욕, 막연히 좋다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산림욕(Forest Bathing)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솔직히 처음엔 '그냥 숲에서 걷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림욕은 스트레스 해소 정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그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효과의 깊이가 제가 예상했던 것과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산림욕의 핵심은 피톤치드(Phytoncide)입니다. 피톤치드란 나무가 해충이나 세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출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인체에 흡수되면 자연살해세포(NK세포, Natural Killer Cell)의 활성도를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코르티솔이란 우리 몸이 긴장하거나 위협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만성적으로 높게 유지될 경우 피로감과 면역력 저하를 유발합니다. 일본 니폰의과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3일간의 산림욕 후 NK세포 활성도가 약 50% 증가하고 그 효과가 한 달 이상 지속됐다는 보고가 있습니다(출처: USDA Forest Service).

로토루아 레드우드 숲은 캘리포니아 적목(Sequoia sempervirens)이 주를 이루는 곳입니다. 이 나무들은 평균 수고 60m를 훌쩍 넘기며, 1901년에 처음 심어졌으니 지금은 수령이 120년이 넘습니다. 이 밀도 높은 고목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농도는 일반 잡목림보다 훨씬 짙습니다. 처음 숲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 닿는 그 서늘하고 짙은 나무 향기는, 어떤 아로마 디퓨저로도 재현이 안 됩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그 첫 호흡 하나만으로도 이미 도시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챘습니다.

두 코스, 직접 걸어보니 이런 차이가 있었습니다

레드우드 숲 안에는 여러 트랙이 있지만, 처음 방문한다면 선택지는 사실상 두 가지입니다. 레드우드 메모리얼 그로브 트랙(Redwood Memorial Grove Track)과 콰리 룩아웃 트랙(Quarry Lookout Track)입니다. 온라인에는 둘 다 '쉬운 코스'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메모리얼 그로브 트랙은 약 2km의 루프 형태로, 30~40분이면 충분합니다. 보드워크(Boardwalk, 나무 데크로 만든 산책로)와 부드러운 흙길로 잘 정비되어 있어서 실제로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도 여럿 봤습니다. 중간에 온천 연못 위에 놓인 나무 다리를 건너면 지열(Geothermal) 지대 특유의 미네랄 향이 살짝 올라오는데, 이게 레드우드 숲의 향기와 묘하게 어우러져서 이곳만의 독특한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지열이란 지구 내부의 열이 지표 가까이 올라와 온천이나 가스 분출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로토루아는 태평양 불의 고리(Ring of Fire) 위에 위치해 이런 지형이 일상 풍경입니다.

콰리 룩아웃 트랙은 약 4.8km에 완만한 오르막과 계단이 포함됩니다. 메모리얼 그로브에서 이어지는 구간이라 자연스럽게 확장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정상인 옛 채석장 전망대에 올라서면 울창한 레드우드 캐노피(Canopy, 나무 꼭대기가 이루는 지붕층)와 로토루아 호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캐노피란 숲 최상층의 나뭇가지와 잎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우산 구조를 말하며, 이 층이 두꺼울수록 지표면은 더 서늘하고 고요해집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풍경은, 오르는 동안 흘린 땀값을 충분히 합니다.

두 코스를 비교해 걷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메모리얼 그로브 트랙: 거리 약 2km, 소요 30~40분, 난이도 낮음. 흙길과 보드워크 위주로 무릎 부담이 거의 없습니다.
  2. 콰리 룩아웃 트랙: 거리 약 4.8km, 소요 1시간 30분, 완만한 오르막과 계단 포함. 트레킹화 착용 권장.
  3. 두 코스 모두 트랙 입구의 신발 소독 스테이션(Cleaning Station)에서 신발 바닥을 반드시 세척해야 합니다. 카우리 다이백(Kauri Dieback)이라는 토양 매개 병원균이 뉴질랜드 고유 수종을 고사시키는 문제 때문입니다.
  4. 주차는 롱마일 로드(Long Mile Road) 방문객 센터 앞을 이용하며, 주말 성수기에는 오전 8시 이전 도착을 추천합니다.

비 온 뒤 이른 아침, 이 타이밍에 걸어야 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맑은 날 오전에 걷는 게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의견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드우드 숲만큼은 비 그친 직후 이른 아침이 압도적으로 다른 경험을 줍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지오스민(Geosmin) 농도가 높아집니다. 지오스민이란 토양 속 방선균(Actinobacteria)이 분비하는 유기화합물로, 비 온 뒤에 맡는 특유의 흙냄새가 바로 이 물질입니다. 인간의 후각은 지오스민을 극히 낮은 농도에서도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했는데, 이 향기는 심리적 안정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출처: Nature Chemical Biology). 거기에 아침 햇살이 안개를 뚫고 내려오는 순간, 일본어로 코모레비(Komorebi)라 부르는 그 나무 사이의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광경은 사진으로 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비 오는 날 레드우드를 걸었을 때, 안개가 고목들 사이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경험을 했습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그 고요함은, 어떤 명상 앱도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비 예보가 있는 다음 날 아침을 일부러 레드우드 산책 날로 잡기 시작했습니다.

숲 내부는 울창한 캐노피 덕분에 외부보다 기온이 2~3도 낮고 습도가 높습니다. 걷다 보면 체온이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므로, 얇은 바람막이 한 겹을 꼭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점은 경험하기 전까지는 잘 모르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걷기가 제 삶에 실제로 한 일들

솔직히 처음에는 '산책이 뭘 바꾸겠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레드우드 숲 걷기를 루틴으로 만든 지 몇 달이 지나자, 제 거울 속 표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정확히는, 덜 긴장해 있었습니다.

운동생리학(Exercise Physiology) 관점에서 보면, 리듬감 있는 걷기는 세로토닌(Serotonin) 분비를 촉진합니다. 세로토닌이란 행복감과 안정감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부족하면 우울감과 수면 장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연 속 걷기는 실내 트레드밀보다 세로토닌 분비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제 경험도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만성 피로가 조금씩 가벼워졌고, 40대에 접어들며 찾아오던 이유 없는 정체감이 서서히 옅어졌습니다.

워킹을 마친 뒤 로토루아 시내의 조용한 로컬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Flat White)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은 제가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포상입니다. 나뭇잎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 조용한 카페에서 손을 감싸 쥐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이, 사실 산책만큼이나 치유가 됩니다. 이건 제가 이 루틴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걷기를 단순한 운동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적어도 레드우드 숲에서의 걷기는 그 범주를 넘습니다. 수령 120년이 넘는 나무 곁에 서면 내가 얼마나 작은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