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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걷기 여행

Whitianga 트래킹 (Cathedral Cove, 해안 절벽, 코로만델 산책)

by 트래킹 마스터 2026. 5. 21.

Whitianga 트래킹 (Cathedral Cove, 해안 절벽, 코로만델 산책)

 

오클랜드에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말마다 멀리 나가는 게 오히려 피곤해졌습니다. 그러다 처음 Whitianga에 갔던 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거창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닌데, 걷고 나서 머리가 이렇게 비워질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Coromandel 반도 동쪽 끝에 붙어 있는 이 작은 마을, Cathedral Cove 트래킹부터 해안 절벽 산책까지 제가 직접 걸어본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Cathedral Cove 트랙, 소문대로인가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Cathedral Cove Track은 뉴질랜드 북섬 coastal walk(해안 트래킹) 중에서 거의 교과서처럼 언급되는 코스입니다. coastal walk란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바다와 지형을 동시에 경험하는 트래킹 방식으로, 단순히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목적지보다 경로 자체가 풍경이 되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초반 오르막에서 생각보다 땀을 꽤 흘렸습니다. 뉴질랜드 북섬 해안은 UV Index(자외선 지수)가 강하기로 유명합니다. UV Index란 태양 자외선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한 지표인데, 뉴질랜드는 오존층이 얇은 남반구에 위치해 같은 날씨라도 한국보다 체감 강도가 훨씬 높습니다. 흐린 날도 방심하면 금방 지칩니다. 선크림과 물을 넉넉히 챙기는 게 사실상 필수입니다.

그래도 언덕을 한 굽이 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Coromandel 동쪽 해안 특유의 turquoise water(터키석빛 바다)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turquoise water란 얕은 수심과 밝은 모래 바닥이 햇빛과 결합해 만들어내는 청록색 계열의 바다색을 말하는데, 오전 햇빛이 직각으로 들어오는 시간에는 남태평양 어딘가의 섬 사진처럼 보입니다. 처음 봤을 때 "이게 뉴질랜드 북섬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트랙을 걷는 내내 작은 전망 포인트들이 계속 나타납니다. 저는 이게 Cathedral Cove 트랙의 진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적지인 아치형 바위 하나만 보고 돌아오는 코스가 아니라, 걷는 과정 안에 바람 방향, 파도 소리, 숲 냄새가 계속 달라지는 감각 변화가 쌓여 있습니다. 뉴질랜드 자연보전부(Department of Conservation)에서 관리하는 이 구간은 해양보호구역과 겹치는 지역이기도 해서, 트랙 아래 바다에서 물고기 떼가 그대로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안 절벽 위를 걷는 감각은 직접 서봐야 압니다

Cathedral Cove 쪽 트랙은 상당 구간이 cliffside walking(절벽 해안 워킹) 형태입니다. cliffside walking이란 말 그대로 절벽 능선을 따라 걸으며 한쪽은 숲, 반대쪽은 바다가 열려 있는 지형에서 이루어지는 트래킹 방식입니다. 평지 산책과는 바람 감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Coromandel 반도는 지질학적으로 marine erosion(해안 침식)이 오랜 시간 반복된 지역입니다. marine erosion이란 파도와 조류가 해안 암석을 깎아내며 지형을 변형시키는 과정을 뜻하는데, 이 지역 절벽이 유독 입체적이고 거친 단면을 가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걷다 보면 바위 색깔과 층위가 구간마다 다르게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 구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람 소리였습니다. 바다는 잔잔한데 절벽 위에서는 바람이 갑자기 세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사람이 거의 없으면 바람 소리만 크게 지나가는 시간이 생깁니다. 뭔가를 억지로 비우려는 게 아니라, 그냥 비워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 산책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비어 있는 공간감'이었습니다.

뉴질랜드 해안 트랙의 이런 분위기는 단순히 인적이 드물어서만은 아닙니다. 풍경 규모 자체가 사람을 아주 작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도시 리듬에 익숙해진 몸이 이 공간에 놓이면, 걷는 속도부터 달라집니다. 그게 의도한 게 아니라 저절로 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꽤 신기했습니다.

Shakespeare Cliff Walk, 현지인들이 더 많이 걷는 이유

Whitianga 주변을 걷다 보면 Cathedral Cove 말고도 챙겨볼 코스가 있습니다. 그중 Shakespeare Cliff Walk는 관광 안내서보다 현지 주민 입에서 더 많이 들리는 이름입니다. 제가 갔던 날도 트랙 입구 주차장에 렌터카보다 현지 번호판 차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 코스의 핵심은 Mercury Bay 방향으로 열리는 전망입니다. Mercury Bay는 1769년 제임스 쿡이 수성 관측을 위해 정박했던 곳에서 이름이 붙은 만입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만의 윤곽이 넓게 펼쳐지는데, 해 질 무렵 빛이 들어올 때는 바다 색이 꽤 다르게 보입니다. 오전과 오후가 같은 장소인데 전혀 다른 풍경처럼 느껴질 만큼 빛 변화가 큽니다.

트랙을 따라 걷다 보면 subtropical climate(아열대성 기후) 영향을 받는 식생이 꽤 눈에 띕니다. subtropical climate이란 열대와 온대 사이에 위치하는 기후대로, Coromandel은 뉴질랜드 북섬 안에서도 이 기후의 영향을 뚜렷하게 받는 지역입니다. 덕분에 숲 색 자체가 내륙보다 진하고, 습도가 높아서 공기 질감이 다릅니다. 여기에 salt wind(소금기 섞인 해풍)가 계속 섞여 들어옵니다.

그 냄새를 맡으면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클랜드에서는 매일 바다 근처에 살면서도 이런 냄새를 맡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도시 안 바다와 트랙 위 바다는 공기 구성 자체가 다릅니다. Shakespeare Cliff Walk를 굳이 Cathedral Cove와 비교하자면, 덜 알려진 만큼 혼자 걷는 시간이 더 길게 만들어지는 코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Whitianga 마을 자체가 산책 코스였습니다

사실 Whitianga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트랙 위가 아니라 마을 안을 걷던 시간입니다. 이 부분은 가기 전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바닷가를 걸으면 oystercatcher(검은부리물떼새) 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oystercatcher는 뉴질랜드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몸통에 붉은 부리를 가진 새로, 갯벌이나 모래사장에서 조개류를 쪼는 습성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소리에 갈매기 울음이 섞이고, 선착장 근처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flat white(뉴질랜드식 에스프레소 음료)를 들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습니다.

저녁 무렵 Buffalo Beach 쪽을 걸었을 때는 햇빛이 바다 표면 위로 길게 퍼지는 장면을 봤습니다. 공기 안 습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면 바람 온도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해안 산책은 생각보다 몸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운동이라는 게 직접 겪어보니 꽤 맞는 말이었습니다.

Whitianga 트래킹을 계획하거나 Coromandel 방면 걷기 여행을 준비한다면 아래 순서로 접근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1. Cathedral Cove Track: 오전 일찍 출발해 turquoise water를 햇빛 좋은 시간에 볼 것. 왕복 기준 2시간 내외이며 선크림과 물 필수.
  2. Shakespeare Cliff Walk: Cathedral Cove와 같은 날 오후에 붙여서 걷기 좋음. Mercury Bay 전망은 해 질 무렵이 가장 좋음.
  3. Whitianga 마을 산책: 트랙 없이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음. Buffalo Beach 구간은 저녁 빛이 좋은 시간에 걷는 걸 권장.

뉴질랜드 관광청(출처: Tourism New Zealand)에서도 Coromandel 반도를 북섬 대표 자연 체험 지역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로 걸어보면 홍보 문구보다 훨씬 조용하고 덜 관광지스럽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좋았습니다.

 

Whitianga는 화려한 일정이 필요한 여행지가 아닙니다.

오클랜드에서 반나절 달려가서 걷고 앉아 있다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거창한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몸 리듬을 한 번 리셋하고 싶을 때, 그런 용도로 딱 맞는 곳이었습니다. Cathedral Cove도, Shakespeare Cliff Walk도, 마을 안 아침 산책도 모두 그 감각 안에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북섬에서 걷기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멀리 가기 전에 Coromandel을 먼저 한 번 들려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